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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빼미 : 아들도 질투하게 만드는 권력

광주여자 2023. 2. 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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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현세자의 비극적인 스토리

영화 올빼미는 맹인 침술사 천경수가 세자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하는 하룻밤 사이의 일을 그린 스릴러 영화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세자는 소현세자입니다. 이 영화는 '세자는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라는 인조실록에 기록되고, 영화에도 나오는 한 문장으로 인해 약 4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은 소현세자의 죽음을 소재로합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 인질로 끌려가 8년간의 타국 생활 끝에 귀국하였지만 조선에 온 지 두 달 만에 병을 얻어 사망한 비운의 세자입니다. 소현세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병명은 학질로, 영화에서도 소현세자는 공식적으로는 학질로 사망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인조실록에 따르면 당시 세자의 염습에 참석했던 종실 이세완이 세자의 시신은 온몸이 전부 흑빛이었으며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피가 흘렀다며 세자가 독살 당했을 수 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세자 죽음 이후 세자빈인 강빈은 누명을 쓰고 사형 당했으며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두 명이 유배 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소현세자의 죽음 배후에 인조가 있을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의심에 힘을 실어 주었으나, 지금까지도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확한 정답을 알지 못합니다.

 

맹인이 보았던 비밀스러운 비극 

천경수(류준열 분)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침술 능력을 인정받아 궁에 들어오게 된 인물입니다. 천경수는 맹인이지만 주맹증을 앓고 있어 빛이 없는 곳에서는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리고 아픈 동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궁 안에서 이 사실을 숨기고 보여도 보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보려고 하지 않은 그의 행동이 그를 보지 말아야 할 것까지 보도록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맹인이라는 이유로 세자의 담당 의관인 이형익(최무성 분)의 선택을 받은 그는, 소현세자(김성철 분)의 치료에 함께 참석하게 됩니다. 세자가 죽음에 이른 그날에도 그는 이형익이 세자를 치료하는 자리에 동행하게 됩니다. 천경수는 이형익이 의관으로서 세자의 열을 내리고 침술을 행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빛이 사라지고 천경수의 시력이 살아난 잠깐의 순간 천경수와 관객은 끔찍한 비밀을 마주하게 됩니다. 천경수의 시력이 서서히 돌아오며 소현세자가 누워서 이목구비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토해내는 것을 표현한 이 씬의 연출은 나에게 올빼미라는 영화를 2022년 최고의 영화로 만들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소현세자가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장면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섬뜩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유해진 배우님의 새로운 모습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제 안에서 가장 큰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유해진 배우님의 연기 스펙트럼입니다. 그전까지 저에게 유해진 배우님은 타짜의 고광렬 혹은 삼시세끼 어촌편의 참바다씨로만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유해진 배우님께서 인조 역으로 영화에서 곤포를 입고 등장했을 땐 맞지 않은 옷을 입으신 듯 어색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영화 내용이 진행되면 될수록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아들을 죽음에 이르고 이를 숨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조의 모습을 유해진 배우님만의 색으로 표현했고, 저 모습이 진짜 인조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이끌어 낼 만큼 유해진 배우님의 연기는 대단했습니다.

얼굴 근육까지 연기하시며 누가 들을세라 문틈으로 조그맣게 이형익을 향해 소리치는 인조의 모습은 저에게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안타까운 왕으로 기억됐던 인조를, 권력의 욕망에 휩쓸려 치졸하게 늙어가는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또한 영화의 후반부 아들 소현세자와 같은 학질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조의 모습은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권력의 끝이 한 칸의 방에서 마무리되는 인생인 것인가 하는 씁쓸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여러모로 올빼미는 저에게 2022년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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