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판되지 못한 우리말 사전 '말모이'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사전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입니다. 또한 말모이는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 선생님과 제자들이 편찬을 시도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기도 합니다. 1911년부터 편찬이 시작되어 주시경 선생이 세상을 떠난 1914년 원고를 거의 마무리하였으나, 편찬 과정에서 편찬자들이 사망이나 망명등의 사건으로 인해 결국에는 정식 간행되지 못하고 현재는 원고로만 그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문화재청은 말모이 원고가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과 국어사전으로써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자료라는 점, 일제 강점이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의의가 매우 큰 보물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전 '말모이'는 출판되지 못했으나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조선어학회를 전신으로 하는 한글학회에서 발행한 '큰사전'은 해방 후 1957년 완성되었습니다. '큰사전'은 '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현재의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원고가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 될 수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우리말을 지키려는 수많은 국민들의 노력이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발견될 수 있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말을 모으는 방법
영화 말모이는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모으기 프로젝트, 말모이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선어학회 대표인 류정환(윤계상 분)과 단원인 조갑윤(김홍파 분), 박훈(김태훈 분), 구자영(김선영 분), 민우철(민진웅 분), 그리고 행동대장 김판수(유해진 분)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 각지에서 우리말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려는 프로젝트를 계획합니다. 말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민우철 부인의 안위에 대한 협박과 조갑윤 선생에게 가해지는 고문, 그리고 조선어학회 대표인 류정환의 부친 류완택(송영창 분)의 친일 행위 등 조선어학회 학회원들은 많은 고초를 겪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전 발행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으나 이를 위해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영화의 주인공인 김판수도 말모이 원고를 지키기 위해 일제를 피해 도망가다 두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김판수는 죽게 되었지만 선생이 되어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으로 그려진 김판수의 아들 김덕진(조현도 분)의 캐릭터로 알 수 있듯이, 일제는 우리 민족의 육신은 멈출 수 있으나 얼은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 노력했던 조상님들의 희생 덕분에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라는 영화 속 명대사와 같이 우리 민족의 정신과 생명은 지금까지도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순한 맛이어서 더 매력적인 영화
솔직한 마음으로 영화 말모이는 135분 동안 큰 감정적인 울림이 있었다던가 시선을 빼앗길만한 액션이나 특수효과 등이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때문에 화려한 블록버스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큰 흥미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본 135분의 매 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소매치기로 삶을 살아가다가 자신들에게 떳떳한 아버지이고 싶어 늦깎이에 글을 익히려는 김판수나 아버지의 변절에도 꿋꿋이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조선어학회를 이끌어가는 류정환 등 주조연의 이야기도 물론이지만 그 외에도 고단한 삶 속에서 민족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한 단어, 한 문장이라도 모아 보태었던 민초들의 모습들이, 거대한 이벤트나 특수효과 없이도 2시간이 넘는 영화 러닝타임을 꽉 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시대물 영화가 많으나 그 속에서 '우리말'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여서 인지 이야기 그 자체로도 티켓파워를 일으킬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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