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막내딸
덕혜는 고종(백윤식 분)의 소중한 외동딸입니다. 아버지 고종이 친일파 대신들과 정사를 보는 엄숙한 분위기를 덕혜가 방해하더라도 너털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고종이 너무나도 아끼는 딸입니다. 당시 고종은 이미 일본의 것이 된 조선을 떠나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망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자신의 계획으로 인해 위험해질 딸 덕혜를 걱정해 어린 나이지만 덕혜의 정혼자로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박해일 분)을 맺어줍니다. 그러나 일본이 고종의 망명계획을 눈치챈 것인지 고종은 어느 날 밤 그가 가장 사랑하는 딸 덕혜 앞에서 독살을 당해 사망하게 됩니다. 덕혜는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것으로도 모자라 일본의 유학 강요로 인해 어머니인 양귀인(박주미)과 생이별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어린 덕혜(김소현 분)는 어머니를 떠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일본으로 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었지만 그녀가 일본에 가지 않는다면 일본이 어머니 양귀인을 죽일 수도 있다는 친일파 한택수(윤제문 분)의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일본 유학을 선택합니다. 어머니 양귀인과의 마지막 인사에서 양귀인은 일본에서는 물 한 모금이라도 조심히 마시라며 덕혜에게 보온병을 전달합니다. 어머니와 궁녀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는 자신을 보필할 궁녀 복순(라미란 분)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게 됩니다.
일본에서 오라버니인 영친왕(박수영 분) 부부와 함께 살며 유학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덕혜(손예진 분)에게 예전 자신의 아버지가 맺어진 정혼자 김장한이 찾아옵니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이었던 그는 어느새 천황에 충성하는 일본의 군인이 되어있었습니다. 그가 변절했다고 생각해 덕혜는 그를 멀리합니다. 그러나 덕혜의 조카 이우(고수 분)의 주도하에 진행된 덕혜옹주를 조선으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통해 덕혜는 장한이 숨겨진 독립운동가임을 알게 됩니다. 결국 한택수의 방해로 인해 그녀가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은 실패하였으나 덕혜는 어머니 양귀인의 편지를 전달해주고 레코드 선물을 주며 다정한 말동무가 되어주는 장한에게 점점 정신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는 덕혜에게 한태수는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한택수는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던 덕혜가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친일 연설을 하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어머니 양귀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던 덕혜인지라 하루라도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기에 그녀는 장한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한택수의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덕혜는 일본에 끌려와 강제 노역을 하는 자신의 국민들 앞에서 일제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고 어머니 양귀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덕혜옹주의 생애
덕혜옹주는 고종의 외동딸, 순종과 영친왕의 이복 여동생으로 궁녀 양 씨의 소생이기 때문에 공주가 아닌 옹주입니다. 고종이 5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얻은 딸로 그는 덕혜옹주를 매우 아꼈습니다. 그녀를 위해 황실 최초의 유치원을 만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라를 잃은 황족으로서 대부분의 황족과 마찬가지로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야 했습니다. 낯선 곳으로 혼자 떠나게 된 그녀는 일본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독살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보온병에 물을 담아 다녔고 일본에서 어머니 양귀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신경쇠약과 조현병 초기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0대 후반쯤에는 정신병 증세가 점점 심각해져 등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불안한 와중에도 그녀는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일본인과 혼인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녀는 대마도의 번주 출신인 소 다케유키 백작과 원치 않은 혼인을 하게 됩니다. 혼인을 하고 1년 뒤 그녀는 딸 마사에(한국 이름 정혜)를 출산하게 됩니다. 딸을 출산한 이후 그녀의 정신병은 더욱 심해졌고 이로 인해 부부 관계 또한 악화됩니다. 결국 약 10년이 지나고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게 되고 이쯤 덕혜옹주의 딸 마사에가 실종됩니다. 딸을 잃은 것으로 모자라 결국 덕혜옹주는 1955년 다케유키와 이혼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덕혜옹주는 1962년 귀국하게 되지만 이미 그때에는 그녀의 옆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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